마지막까지 월세 5천만원 기부...단 한시도 나눔 잊지않아
살아 생전에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면 거론될 수 있는 인물은 누굴일까? 그동안 생각났던 물음이다.
여러 사람을 떠 올릴 수 있지만 그 첫 생각이 박춘자 할머니에 우선 머문다. 그 박춘자 할머니가 별세했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살신성인과 같은 기부의 미담은 오래도록 우리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니 영원히 각인될 것이다.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고 40년간 장애인을 위해 봉사해 온 박춘자 할머니(95)가 마지막까지 한순간까지 5천만원 월세 보증금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짧은 인생은 아니었지만 너무도 아름답고 본 받을 삶이었다. 백수의 생을 누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그녀의 명복을 빌고, 편안한 안식을 또 빈다.
어린이 돕기 사회공헌재단인 초록우산에 따르면 박 할머니가 지난 11일 세상을 떠나며 생전 밝힌 뜻에 따라 살고 있던 집의 보증금 5천만원을 기부했다고 13일 밝혔다.
그. 아니 그녀는 열 살 무렵 학교를 중퇴한 할머니는 2008년 "돈이 없어 학업을 놓아야만 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며 매일 남한산성 길목에서 등산객들에게 김밥을 팔아 모은 3억원을 초록우산에 기부했다.
박 할머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적장애인 11명을 집으로 데려와 친자식처럼 돌보며 수녀원에 장애인 그룹 홈 건립 기금 3억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녀의 선행과 기부행렬 그리고 지적장애인을 자식으로 키운 그 일을 뭇 사람이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박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나눠야 한다"고 되뇌이며, 기부를 이어갔고 2021년에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LG 의인상을 받았다.
2021년엔 청와대 기부·나눔 단체 행사에 참석자들의 가슴을 적신 사연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그 사연은 박 할머니가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일본 순사의 눈을 피해 김밥을 팔아 돈을 번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렇게 번 돈으로 먹을 걸 사 먹었는데 너무 행복해서 남한테도 주고 싶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이 행복을 줄 수 있었다. 나누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 돌았다.
박 할머니는 화장 후 안성추모공원에 안치됐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기부 행렬과 지적 장애인 돌보기 등 인간으로서 행하기 너무도 힘든 미담은 한국사회에 오래도록 간직 될 것이다.
사회가 시끄럽고 각자도생이 답이라는 사회진단이 많은 가운데 그녀의 살신성인의 기부정신은 우리가 어려울 때 마다 되새겨질 것이다. 사람답게 살고 성인에 버금가는 평가가 어디서 오는 지 일깨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