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제2차대전 이후 미-소 냉전시대를 거쳐 데탕트(화해)와 자유무역을 지나, 급격히 미-서방을 축으로 하는 '서방동맹'과 중국과 러시아를 축으로 하는 '전제국가 동맹'으로 나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이들 양진영이 주축이 된 경제블록이 속속 형성되고 그 안에서도 각 국가별 안보-경제-자원을 우선시하는 '보호무역'이 강화되는 추세다.

2010년대 들어서 글로벌패권을 놓고 미-중 무역갈등과 기술전쟁이 시작되고, 2019년 말 '코로나19'로 글로벌공급망이 타격을 받은데 이어 지난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발발로 세계 경제질서가 흔들리고 지역내, 자국내 경제와 기술 그리고 에너지자원의 보호를 앞세운 국수주의가 판치고 있다.

폴리티코는 최근 “세계 경제 전쟁으로 무너지는 첫 희생양은 '자유시장 질서'”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각 정부가 자국 안보를 최우선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례없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국가 안보와 천연자원 확보 경쟁이 각국 지도자들의 가장 큰 과제로 부상 중이며, 1940년대 이후 당연시되던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정부 주도 경제로 전환하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 결과는 기술 중심의 군비 경쟁, 미국 달러 패권의 종말 가능성, 냉전 시기 소련 세력이 배척당했던 것처럼 중국과 그 동맹국의 고립과 같이 다양하고 광범위한 모습으로 나타날 개연성이 높다..

최근 각국 재무 장관과 중앙은행 최고위 관료들의 발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개방 무역과 평화에 중점을 둔 기존 질서가 적대적이고 정치적으로 경쟁적인 틀 안에서 공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메시지를 모두들 그 어느 때보다 진솔하게 내 놓고 있다.

먼저 서로 다른 경제권 간의 무역과 투자가 제약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군사-민간 융합(Military-civil fusion)'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고 이 개념에 부합하는 기업들 즉, 중국 군부와 관련된 기업, 반도체 제조 도구, 첨단 반도체, 양자 컴퓨팅, 군사 또는 감시 기능을 갖춘 AI 부문 등에 대한 투자 제한이 예상된다.

재닛 옐런(Janet Yellen) 미 재무장관은 지난주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열린 연설에서 "오늘날 각국의 경제 정책은 사실상 철저히 국가 안보를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미국은 경제적 이익에 반한다고 할지라도 안보 우려를 등한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EU의 파비오 파네타(Fabio Panetta)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는 5월 1일 브뤼셀에서 열린 연설에서 ”자유무역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평화 유지에 초점을 맞춘 기존 질서는 상호 적대적이고 정치 경쟁이 격상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공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변화의 경제적 비용이 클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유 시장에 대한 제한을 더욱 확장할 것을 촉구하는 주장도 있다. 미국은 헤지펀드, 사모펀드, 월스트리트가 자국 경제를 해하거나 중국 정부의 적대적 움직임에 자금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U(유럽)도 이 같은 변화의 추세를 실감하고 있다. 파비오 파네타 ECB 집행이사는 “중국의 보복 조치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금융 및 경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금융 간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특히 서방의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보호 무역주의가 강화될 경우 무역 및 준비 통화로서 달러의 지위 약화라는 또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뒤 따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BWS)하에서 미국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 부상하면서 미국은 끝없이 달러 표시 자산을 생산해 냄으로써 무역 적자에 대응할 수 있는 막대한 특권을 누려 왔다.

이제 새로운 변화의 흐름으로 유로화, 위안화, 심지어 루피화가 처음에는 각자의 영향력 영역에서, 이후 점차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다극화된 금융 시스템은 중앙은행과 재정 정책 간의 드문 '상호 의존성'을 필요로 하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베이징 대학 광화 경영대학원의 경제학자 마이클 페티스(Michael Pettis)와 같은 중국 전문가들은 이런 일이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달러에서 위안화로 유의미한 전환이 이루어지려면 수출업체들이 누적된 흑자를 위안화로 보유하기를 원해야 하며,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이 통화 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고 영구적인 적자를 위해 흑자를 포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달러는 여전히 전 세계 외환보유고와 외채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제 무역의 약 절반이 달러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국제 중앙은행들이 준비금의 상당 규모를 금으로 전환한 움직임은 달러 제재를 외교 정책 도구로 사용하는 것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러-우 전쟁이 시작되자 지난 2월 말,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서방국 중앙은행이나 상업은행에 맡겨둔 외환보유액을 꺼내 쓰지 못하도록 했으며, 이는 중앙은행들의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 러시아의 외환 보유고를 몰수하고 이를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해 재배치하라는 요청은 더 격화되고 훨씬 더 위험한 몰수 선례가 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군사-민간 융합의 새로운 시대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미국 방위산업체 중 하나인 스페이스엑스(SpaceX)와 트위터(Twitter)의 CEO인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5월 2일 트위터를 통해 1억 3,600만 명의 팔로워에게 “통화를 충분히 무기화하면 다른 나라들이 사용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는 국가 안보와 자원 경쟁으로 인한 정부 주도 경제로 급속히 전환되는 추세다. 기술 중심의 군비 경쟁으로 향하고 있으며, 해외 투자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확대되고 서방의 제재에 대해 중국의 보복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자유무역이 퇴조하고 보호무역이 득세하며, 안보를 내세운 '안보경제'란 말이 최선의 국익을 표현하는 용어로 등장한 지 오래다. 지구촌이 총성없는 경제-자원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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