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산업장관, 자동차·배터리·반도체업계와 간담회서 밝혀
민관 공동대응반, 美와 협의…WTO 제소는 최후 수단

美 반도체법·IRA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민관 '원팀'이 구성되고, EU와 공조가 추진된다. 특히 "합동 대응반을 구성해 美와 협의하고, WTO 제소는 마지막 수단이 될 것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25일 자동차·배터리·반도체업계와 간담회서 이 같이 강조했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제정으로 자동차·배터리·반도체 업계에 비상등이 켜지자 정부가 민관의 역량을 총결집한 '원팀'(One Team)을 구성해 대응키로 했다.

이창양장관 주재로 이날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반도체·자동차·배터리 업계 간담회'를 열고 이러한 방안이 논의됐다.

이날 간담회에는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현대차·기아, LG에너지솔루션[373220], 삼성SDI[006400], SK온 등 배터리·자동차 기업 관계자를 비롯해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전지산업협회 등 업종별 단체가 참석했다.

◇ 민관 합동 대응반 구성…정부-업계 상시 소통하며 美와 협상 추진

정부는 최근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을 통해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서려는 것으로 보고 민관 합동 대응반을 구성해 미 행정부 및 의회와의 협의를 다각도로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당초 반도체법(Chips Act) 초안에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이 없었으나 의회 논의 과정에서 추가됐고, 전기차 보조금 개편 내용이 포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도 법안 공개 후 약 2주 만에 전격적으로 통과됐다"면서 "미국의 국내 정치 요소, 중국 디커플링 모색, 자국 산업 육성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근 미 의회가 통과시킨 반도체 지원법은 미국 내에서 반도체 관련 신규 투자를 진행하는 기업에 대해 재정 지원과 투자세액공제를 제공하되 이른바 가드레일 조항에 따라 향후 10년간 중국에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산업부는 통상정책국장을 팀장으로 민관이 수시로 소통할 수 있는 합동 대응반을 구성하고 통상 규범 검토와 대미(對美) '아웃리치'(접촉·설득), 주요국 동향 모니터링 등에 나설 예정이다.

또 반도체 지원법이 메모리 등 범용 반도체 관련 설비에 대해 가드레일 조항 예외를 인정하는 만큼 이를 활용해 미 상무부와 협의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필요할 경우 산업부와 미 상무부 간에 이미 구축돼 있는 한미 반도체 파트너십과 공급망·산업 대화 채널 등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 EU 등과 IRA 공동 대응 방안 모색…"WTO 제소는 마지막 수단"

정부는 당장 올해부터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기차들이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IRA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본 요건을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로 한정하면서 이를 올해부터 즉시 적용하겠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수입 전기차 판매량(플러그인하이브리드, 수소차 포함)은 한국산이 3만2천대, 일본산이 6만3천대, 독일산이 5만대, 스웨덴산이 2만3천대로 집계됐다.

더욱이 내년부터는 배터리의 광물·부품 요건까지 추가되면서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도 보조금을 받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은 58%, 코발트는 64%, 흑연은 70%를 중국 제련시설에 의존하고 있어 배터리 업계가 IRA의 광물·부품 요건을 단기간 내에 충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0일 IRA가 미국 상원을 통과한 직후 미 무역대표부(USTR)에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제 통상 규범에 위배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정부는 통상 규범 위배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는 동시에 EU, 독일 등 유사한 입장을 지닌 국가들과 협력해 공동 대응 방안 모색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필요시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와 함께 다음 달께 IRA 관련 공동 입장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정부는 WTO에 제소하는 방안은 최후의 수단이며 미국과의 양자 간 협상을 통해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정대진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한 출입기자단 대상 백브리핑에서 "WTO 제소는 말 그대로 최종적인 방안이고, 미 정부와 일단 최대한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국익에 침해되는 부분이 많다면 WTO나 FTA를 통한 분쟁 해결 절차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9월 초부터는 EU 등 우리 정부와 입장이 유사한 국가들과 공조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산업부는 다음주 중으로 안성일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을 미국에 파견해 고위급 협의에 나설 예정이다.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도 다음달 8∼9일 열리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급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해 우리 측의 의견을 전달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연내에 미 재무장관이 발표할 배터리 광물·부품 요건 하위 규정에 우리 기업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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