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주도 '팹4동맹' 반도체 제조 넘어 산업정책화 가능성
4개국 반도체장비 73%-설계와 생산 91% 과점상태
미-한-대만-일 이어 네덜란드 노광장비 ASML까지 협력모색

미국 주도, 미-한-일-대만 등 팹4(일명 ‘칩4동맹’)가 반도체 협력을 넘어 산업정책 및 수출통제 공조까지 이어질 지 관심사다.
미국 주도, 미-한-일-대만 등 팹4(일명 ‘칩4동맹’)가 반도체 협력을 넘어 산업정책 및 수출통제 공조까지 이어질 지 관심사다.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 구축과 선점을 위해 산업의 쌀로 비유되는 반도체산업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팹4동맹'이 더 큰 공조정책으로 발돋음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다시 말해 팹4(일명 ‘칩4동맹’)를 통해 반도체 협력을 넘어 산업정책 및 수출통제 공조까지 미-한-일-대만이 함께 할 가능성이 일각에서 점쳐진다.

미국이 반도체산업 협력 강화를 위해 한국, 대만, 일본 등 반도체 강국과의 협력체인 ‘칩4동맹’을 제안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 협력체가 반도체제조 인센티브 프로그램 공조뿐만 아니라 반도체 관련 수출통제 정책이나 보조금 등 산업정책 측면에서도 활용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칩4동맹’에 대한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이나, 인사이드유에스트레이드 등에 따르면 미 당국은 반도체칩 공급망 안보에 역점을 둔 협력체 출범을 위해 한국, 대만, 일본 당국자들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기준 미국과 한-일-대만 등 3개국은 전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약 73%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4개국은 반도체 장비의 73%, 파운드리의 87%, 설계 및 생산의 91%를 차지하는 과점 구조다.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이 추진 중인 ‘칩4동맹’을 통해, 국내반도체 생산 인센티브에 초점을 맞춘 산업정책 이니셔티브, 수출 통제, 공급망 모델링 및 다각화, 외국인 투자 관행 등 반도체 강국 4개국간 다양한 이슈를 다룰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과학지원법안’에 서명하면서 반도체 산업정책이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고, 여타 3개국도 세액공제 및 보조금 지원 등 반도체산업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티진 라세르 ‘신미국안보센터 기술국가안보프로그램’ 담당국장은 각국 산업정책이 제살 깎기식 바닥치기 경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칩4 동맹’을 통해 건설적인 산업정책 공조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요인프라 민간협력 재단 ‘MITRE’의 라지 자미 수석 기술전문관은 반도체업계가 이미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한 국가나 기업만이 독자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에 미국 IT매체 ‘세미애널리시스’의 딜란 파텔 수석 분석가는 기존의 반도체 공조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고 공감하면서도, 시시각각 급변하는 이 산업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협력 분야가 생겨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전쟁’의 저자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산업정책 공조를 통해 제살 깎기식 보조금 경쟁을 도모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좋은 생각이나, 현실적으로 실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많은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는 중국을 동맹에서 배제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공급망 매핑이나 모델링 측면에서는 공조의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반도체공급망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완벽한 공급망 매핑 도출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파텔은 수출통제 부문을 가장 의미 있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협력 분야로 꼽았다. 실리콘 웨이퍼, 파운드리, 반도체 주요 설비 분야에서 4개국의 점유율이 75% 이상인 바, 반도체 굴기를 노리고 있는 중국의 야망을 꺾기 위한 대책 도모에 공조를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파텔은 주장했다. 

이와 관련 라세르는, 반도체 수출통제에 대한 다자간 접근은 새로운 수출통제체제 구축을 모색 중이라는 알란 에스테베즈 미 상무부 차관(미 수출통제 정책 책임자)의 최근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지적했다. ‘칩4동맹’을 통해 새로운 수출통제체제 구상에 대한 대략적인 초안을 도출한 다음, 종국에는 세계 최대 노광장비 기업인 ASML의 모국인 네덜란드도 이 새로운 수출통제체제에 편입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파텔과 밀러는 네덜란드 없이 우선 4개국으로 구성된 수출통제체제를 출범한다 해도 충분히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ASML은 노광장비 하나만을 수출하는 업체로서 해당 장비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출하는 장비가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4개국만으로도 충분히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다, 수출통제정책 협상 과정에서도 ‘사공’이 적으면 적을수록 협상도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파텔은 이어, 수출통제 부문을 칩4동맹에 포함시킬 경우 한국처럼 아직까지 동맹 참여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국가들을 설득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밀러는 이밖에 대내외 외국인 반도체 직접투자 부문도 동 동맹에서 다뤄질 가능성은 있으나, 공식적인 관련 규정 수립까지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했고, 윌 헌트 ‘조지타운대학 안보 및 신흥기술 센터’ 연구원도 동 동맹이 궁극적으로 협정 체결로 이어지기보다는 여러 중대 이슈를 논의하는 협의체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세계 반도체산업에서 미국은 설계기술 및 장비, 한국은 메모리, 대만은 파운드리, 일본은 장비분야서 강점을 보인다.

미국은 한국에 '칩4' 참여여부를 이달 말까지 결정하라고 압박하고 있고 중국에 반도체 생산의 68%를 수출하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공장도 중국에 두고 있다. 미-중의 사이에 낀 한국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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