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R&D자금이 술술 새고 있다는 현실은 실로 충격적이다. 부정 수급이 만연하고 심지어 한 업체가 같은 기술을 개발한다며 여러 군데 공공기관에서 중복으로 자금을 지원받는 경우도 발생했다. 국민세금인 정부예산이 ‘R&D사냥꾼의 먹이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산하기관이 국회에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서 R&D자금을 탄 기업중 기술개발에 사용치 않거나 인건비 등을 부풀려 부정수급으로 적발된 업체가 최근 3년간 20건 200억원이 넘는다.

더욱이 한 업체는 ‘선박 평형수 기술개발’이란 동일한 기술개발 명칭으로 선박용량과 평형수 용량을 더 크게 개발한다는 미명 아래 8년여간 한국산업기술관리평가원과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그리고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서 3번씩이나 수십억의 기술개발 자금을 타 냈다.

뒤늦게 문제가 제기되자 최초 자금을 준 산업기술평가원은 올해 초 이 업체의 부정수급 여부를 수사해 달라고 검찰에 고소한 상태다. 이같은 사실은 이 업체에 근무하다 퇴직자 임원이 이를 외부에 알리면서 시작됐다. 만약 내부 고발인이 없었다면 묻힐 사정이었다.

왜 이렇게 허술한 걸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민간 기업이라면 이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정부 등 감독기관은 눈감고 있었던 것일까.

이 업체의 대표는 “퇴직한 임원이 회사에 앙심을 품고 사실이 아닌 거짓을 무고했고, 선박평형수 용량을 늘리려면 새 기술이 필요하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1997년 말 1천톤 선박의 평형수를 개발한다면 기술개발자금을 타고 바로 1998년 1월에 시험인증기관에 이 제품 인증을 신청한 것을 보면 이미 개발한 기술을 ‘미 개발기술’ 인 것처럼 속이고 부정수급했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기술개발을 하려면 2년은 족히 걸린다는 설명이다. 특히 독일의 같은 제품을 브랜드만 바꿔 국산 개발한 것처럼 속였다는 지적도 잇달았다.

이 업체는 이후 2천톤 형평수와 3천톤 평형수등을 개발한다며 에너지기술평가원과 산업기술진흥원에서 또 자금을 탔다.

국회에서는 더 정확한 사실을 밝히기 위해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또한 검찰 수사결과를 더 지켜 볼 일이다. 하지만 산기평이 이 업체를 고소한 것은 그만큼 문제가 심각했다는 자체 조사에 따른 것이다.

산업부 산하 산기평-산기재단-에기평의 연간 R&D 지원규모가 4조원이 넘고 국가 전체 R&D규모는 20조원이 넘는다. R&D 사냥꾼에게 당하는 사례가 빙산의 일각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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